인간이 원석을 발견한 이후 연마 기술은 보석과 조각을 탄생시켰습니다. 투명한 돌은 제식의 의미로, 보석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보석 커팅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선원근법과 플라톤의 입체가 발달하면서 정다면체,
특히 정팔면체와 정십이면체가 이상적인 커팅으로 간주되었고, 보석 커팅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7세기 말 베네치아의 빈센트 페루찌가 발명한 브릴리언트 컷(Brilliant Cut)은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적인 컷이지만, 오늘날까지도 만연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커팅의 근본 원리가 수백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1960년대 포스트모던과 탈물질주의 영향으로 현대 장신구의 개념이 새롭게 구축
되면서 보석에 대한 장신구 작가들의 시선이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에 이르러 독일의 베른트 문슈타이너가 브릴리언트 컷의 근원적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고 보석이라는 소재와
커팅 기술에 대한 관습화된 시각을 거부하게 됩니다. 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된 관행으로부터의 분리였고, 전통적 기초 위에
시도된 물질의 미학적, 물리적 특성에 대한 실험적 탐구였으며 인체와의 조우였습니다.
그를 주축으로 창의적으로 연마된 보석 오브제 또는 보석 장신구가 차츰 체계화되었고, 미학적 개념을 구축하면서 예술의
주재료로써의 보석이 드디어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
이상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국내외 현대 장신구 작가들은 일정 공식을 토대로 연마하는 정형화된 보석이 아닌, 원석 자체를
직접 디자인하고 연마하여 본질적인 차이를 보일 수 있는 새로운 보석 형상을 추구합니다.
작가들의 다양한 커팅 실험과 자율적이고 현대적인 보석 장신구와 오브제, 조각 등 예술품들은 시장가치의 기준이 되는 보석의
중량, 컬러, 무결점, 연마, 희소성 등의 기준을 넘어 자연 색채, 내포물, 결정 구조상의 결점 등 결정 본연의 형태에 집중 합니다.
불순물로 여겨지던 결정 표면의 균열 같은 광물의 자연적 형태 또한 살아있는 소재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범람하는 획일화된 美(아름다움)가 무의미하게 다가온다면 기존의 상업적 틀을 벗어난 다양한 보석 미학의 새로운 담론을
자유롭게 교감하시고 반겨주셔도 좋겠습니다.
2020. 06
갤러리 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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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lhelm Lindemann, 『nsaio⁶』, Arnoldsche Art Publishers, 2016, p.43.